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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김동인, 눈을 겨우 뜰 때_소설

친일논란이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화가 나기도, 속상하기도 하다.

편식이 심한 독서를 하는데다 끝까지 책을 잘 못읽는 나인데, 김동인 단편을 모두 다 흥미롭게 읽었기에.

<눈을 겨우 뜰 때>는 읽은지 좀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소설의 일부 구절이 있어 그것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먹고 입고 일하고 또 먹고 자고, 이튿날도 또 같은 일을 거푸 하고. 오십 년이라기도 하고 백 년 이라기도 하는 일생을 이렇게 지내니, 살아간다는 것은, 다만, 이것을 뜻함인가. 즐거운 꿈을 꿈이라 업신여기니, 살아가는 동안에 때때로 이르는 즐거움과 즐거운 꿈 새에 과연 구별이 있는가. 없는 자는 있기를 바라고 있는 자는 더 있기를 바라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다만 욕심 채움을 뜻하는 가. 젊어서 죽은 사람을 애달프다 하니 늙은 뒤에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에 이르는가.


늘 '죽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는 나에게 참 와닿는 구절이기도 했고, 저 생각을 한 작중 인물 '금패'는 기생이고 옛날 사람임에도 현대를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그다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조금은 허무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삶에 대한 생각, 그 속에서 만나는 즐거움에 대해 고찰하는 생각의 흐름은 내가 행복을 고민하던 것과 참 비슷했다.

김동인의 다른 단편선들에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들이 엿보였는데, 그 내용들에 공감했던 부분이 많아서 이 작가가 심적으로 아름답거나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시대상이 정상적인 정신상태로 살아 갈 수가 없는 세상인게 당연한데, 거기서 더 나아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아주 오래 깊이 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창작자들은 인간과 삶에 집중하고 그것을 담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에 비하면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건데 어째서 이 일제강점기 암흑시대의 소설들에 이토록 공감하는지.
(꽤 오래전부터 해온 생각인데 현시대상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이 개인적인 고찰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끄적여보려고 한다.)

다시 각설하고, 단편집 중에 <죽음>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는데 여기에 작가의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 조각들이 큰 깊이 없이 끄적여진게 아닌가 싶다.

인생의 씁쓸함과 허무함이라는 감정에 젖어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나는 우울하고 슬플 때 그 감정에 충분히 집중하는 편을 좋아한다. 거기에 푹 잠겨야만 까닭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가라앉고 정리가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길이도 짧고 여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