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막심 고리키, 스물여섯 명의 사내와 한 처녀_소설

긱네임 2021. 10. 25. 23:12

구질구질함이 잔뜩 담긴 작품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나 뭐 가난하고 찌질하고 그랬겠지만, 러시아는 그런 힘겨웠던 삶이 하나의 소설 장르로 나뉘어 있을 만큼 쪼들리고 찌든 삶을 그려내는 일에 진심이었으며, 전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보샤키 문학'으로 소개되었으나, 뭔가 또 불리는 이름이 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하다.)
이 작품은 특히나 그 찌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가난에서 오는 단순 외적인 찌질함이 아니라 하층민으로 살아가면서 자존감이 낮아진 인간이 어떠한지, 그리고 가난으로 쪼그라든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난 이 소설을 읽을 당시, 작중 스물여섯 명 사내들의 모습에서 찌들어버린 현대 직장인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며 공감을 했었다.
다시 보니까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까지 관통할 만큼 아주 인간 본성과 근본의 찌질을 제대로 보여준 명작이었는데 말이다. (당시의 나도 쭈굴한 삶을 살고 있었던거겠지... 물론 지금도 뭐...)
작중 스물여섯명의 사내들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축축한 지하실에 갇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빵과 과자를 만드는 노예숙련공으로 일한다. 노동에 제대로 된 대우나 대가를 받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로, 지상의 낮은 사람들에게서 조차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더 슬픈 것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혐오하여 자기가 만든 빵을 단 한 입도 먹지 않는다. 주인(놈)이 주는 썩은 내장을 점심으로 받으면서 자신들이 만든 빵은 먹지 않는 다는 것에서 이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지하에 자주 빵을 사러 오는 '타냐'라는 소녀가 있는데, 그녀는 귀엽고 자신들에게 친절한 유일한 사람이니 자연스레 그들의 팍팍한 일상에 빛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꼴보기 싫은 놈이 하나 등장하는데, 이 자식이 도화선이 되어 이 찌질노예 스물여섯 사내들은 (자기들 멋대로) 인생의 사랑, 희망, 기대와 같은 온갖 긍정적인, 어쩌면 그들에게는 평생 느껴볼 수 없는 한낱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그런, 감정들을 타냐에게 걸어버린다. (결말까지 읽어야 이 소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아래는 내가 하이라이트 한 부분과 간단한 감상을 적어보았다.

아마도 '고된 노동자'에 빙의해서 하이라이트한 것 같은데, 지금 읽으니 참 헛웃음이 난다.

고된 노동에 모든 감각이 무감각해져 깎아놓은 나무토막같이 반쯤 죽어있는 자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침묵이 두렵고 괴로운 것은 할말을 다 해 버려서 더 이상 할말이 없는 사람뿐이다. 말을 꺼내지도 못한 사람이게 침묵이란 쉽고 간단하다......
커다란 돌집 지하실에서, 3층짜리 건물의 무게가 그대로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몹시도 힘겨웠다.


그리고 아래의 이 대목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감, 좌절감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주위에 어떤 것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야말로 가장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경우 그의 영혼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으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주위의 불활성에 더욱더 괴로울 뿐이다.

물론 실질적으론 주위가 변하지 않는다기보단 긍정적인 변화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가면서 나아져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은, 도전이나 큰 변화가 힘들어 현상유지에 급급하게 되는 그런 형태의 좌절감이라고 해야하나.


아래는 잘못된 사랑에 공감되어 표시해 놓았던 부분이다.

우리가 그녀를 사랑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족했다. 인간은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짓밟고 더럽히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사랑을 쏟아부을 대상을 필요로 한다. 때로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사람의 삶을 질식시키기도 한다. 사랑하는 것은 알다시피 존경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냐를 사랑해야만 했다. 그녀 외에는 그 누구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명의 사내가 처한 환경이 그들을 사랑에도 찌질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 부분에서 사랑이라는 것의 어두운 본성이 어떤지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애정이 결핍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비참하구나 싶다.

아래 인용한 단락도 역시 그런 인간들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영혼이나 육신의 질병이나 다름없는 어떤 것을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훌륭한 것인 양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평생 그 병을 자랑스레 달고 다니며 그것을 살아가는 보람으로 삼는다. 그 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그들은 그것으로 살아가고 징징거리며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그들은 그 병을 가지고 사람들의 동정을 얻으려 하고, 그걸 빼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서 이 병을 빼앗아 고쳐버리면 그들은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삶의 유일한 수단을 잃어버리면 그냥 빈껍데기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 인생이란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라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결점을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로 인해 목숨은 부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할 일 없이 지루한 나머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시 읽었을 때 특히나 현대의 미치광이 관심종자가 떠올랐다. 최근 화제가 된 가스라이팅이란 말도 떠오르고. 옛날에도 역시 사람사는 건 다 똑같나. 이런 심리적인 관념과 개념들을 이렇게까지 탁월하게 묘사했다는게 놀랍다.

역시 찌질전문가다운 필력...(좋아 헤헤*)
하지만 고리키 소설들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고키리 단편집을 읽으면서 하이라이트를 진짜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만큼 구절 하나, 문장 하나가 마음을 후벼판다는 것.